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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영화 서막의 웅장함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의 시대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그 시대를 잘 표현한 작가의 위대한 문학의 능력에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작품과 문학사에서 놓을 수 없는 레미제라블을 소개하겠습니다.
레미제라블 영화의 서막
이 영화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영화입니다. 출연자로는 휴 잭맨(장발장 역), 앤 해서웨이(판틴 역), 러셀 크로우(자베르경감 역) , 사이 프리 디(코제트 역), 헬레나 본 햄 카터(테나르디에 부인역)가 있습니다. 영화의 서막으로 죄수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객석에 울려 퍼집니다."이곳은 지옥이라네 여긴 자비가 없는 곳 모두가 널 잊었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 아직 20년이 더 남았어" 장발장 그는 빵 한 조각의 대가로 19년 형을 살아야 했습니다. 자베르 경감은"너의 죄는 5년 나머지 탈옥의 죄"라고 일깨워줍니다. 가석방된 장발장은 자유의 몸이 되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장발장은 가난 때문에 삶은 밑바닥에서 허덕였고 어디를 가도 빈부의 격차는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삶 또한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회 시대상
1789년 프랑스 사회는 절대왕정 하에 있었으며 일부 선진국에서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귀족과 성직자들은 봉건 제도로 특권을 누렸고 왕이 준 영지에서 먹고 즐기면서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나태한 생활로 재정이 바닥에 이르자 농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 98%이던 평민이 세금을 부담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6차례의 큰 전쟁에 참여하여 국가 재정도 바닥에 이르렀으며 18세기 후반의 경제는 더욱 심각해져 빈곤에 허덕이던 평민들은 결국 민중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1789년 7월 12일 무기를 탈취한 프랑스 민중은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고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개혁 의지를 갖게 됩니다. 파리 시내의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민병대 사령관 라파예트를 임명하게 됩니다. 프랑스군이 민중들을 공격할 때 큰소리로 당당하게 "프랑스 혁명군이다"를 외치는 사람이 라파예트입니다. 영화 속 장면에서는 민중들의 단합된 함성 소리가 우렁차게 깃발과 함께 울려 퍼집니다"성난 자들의 노랫소리가 북 소리 되어 울리네. 붉은색은 성난 자들의 핏빛. 검은색은 어두운 세월의 상징. 이제 붉은색의 새벽이 열리면 검은색의 밤은 끝날 거야"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혁명의 긴장감을 한 층 더 고조시켰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혁명은 지방 도시들도 연맹을 맺고 협력하게 됩니다. 이때 권위가 떨어진 루이 16세는 왕비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피신하려다 발각되는 일도 생깁니다. 1791년 루이 16세는 자신의 폐위와 귀족들의 재판을 요구하는 5만 군중에게 발포를 명령하여 100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킵니다.(샹 드 마르스의 학살) 그 해 9월 입헌 군주제를 골자로 한 프랑스 헌법이 선포됩니다.
낭만주의자 Victor Hugo
빅토르 위고(1802년~1885년)는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프랑스 작가입니다. 그는 정치에 뛰어든 데생 화가이며 재능 넘치는 정치가입니다. 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있습니다. 그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으며 급작스럽게 정치적 성향을 바꾸면서도 인도주의적인 자신의 신념만은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정치가이기 이전에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권력가라기보다는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습니다. 1882년 소꿉친구였던 아델 푸세와 결혼하고 1822년 첫 번째 시집 오드와 잡영 집(Odes et Poesies Diverses, 1822)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집은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초기 명성을 얻게 해 준 시집입니다. 이 무렵 그는 왕당파이자 가톨릭 성향이었으며. 이때부터 사실상 낭만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날 무렵 인도주의자와 자유주의자로 기울어서 황혼의 노래(1835), 가을의 나뭇잎(1831), 노트르담 드 파리(1831)를 발표하게 됩니다.빅토르 위고는 1843년 사랑하는 딸을 잃자 비탄에 빠져 10년간 문필을 중단하고 정치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제정을 수립하려 하자 그는 쿠데타에 동조를 하지 않아 19년의 기나긴 망명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망명생활 동안 나플레옹 3세를 비난하는 징벌 시집(1853), 바다의 노동자(1866), 웃는 사나이(1869)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1862)을 통해 사회를 고발했습니다. 이 작품이 오늘날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