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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예술가라 불리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 알아보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서 작품에 담긴 열정을 찾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도 느껴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를 소개합니다.
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대하여
미켈란젤로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21년 개봉한 영화로 그의 인생을 따라가며 역사적 사건과 작품 속에 담긴 고뇌를 알아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로 조명되었는지 탐구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활기찬 그림자 속에서 1475년 3월 6일에 투스카니 지방의 카프레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켈란젤로가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예술에 대한 재능은 유명한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게 만들었고 피렌체의 강력한 통치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면서 다빈치와 같은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피렌체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그는 17세에 켄타우로스 전투를 조각하여 대리석을 다루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생명이 없는 예수의 몸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인 유명한 피에타를 만들었고. 그의 나이 24세에 완성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해부학적 정확성과 감정 표현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외 나타나는 작품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계단의 성모(1491), 켄타우로스의 전투(1492), 바쿠스(1497), 피에타(1498-1499), 다비드(1501-1504), 모세상(1505-1545), 카시니 전투(1505), 시스타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1536-1541), 성베드로 대성당(1546-1564), 산 로렌초의 성당 지하벽화(1532-1534), 론다니니의 피에타(1564)가 있습니다.
예술성과 삶이 일치되어 버린 에피소드
유명한 동상인 다비드상 조각할 때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하나 알려주자면, 거대한 대리석 블록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작업에 너무 열중한 탓에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리석을 깎아내다가 돌에 흠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몹시 짜증이 났다고 합니다. 좌절감에 미켈란젤로는 동상에게 “왜 나한테 말을 안 하시나요?”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대리석이 반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을 건 상황에 미켈란젤로는 농담조로 대리석 덩어리가 협조하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위협했다고 합니다. 유머스럽지는 않지만 생명이 없는 대리석 블록과 대화하는 위대한 예술가의 이미지는 진지하고 기념비적인 그의 예술적 유산에 기발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의 일입니다. 하루 2시간을 제외하고 그림에 열정을 쏟은 결과 4년이나 걸려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이 작업이 느린 것을 탓해 언제 다 완성되느냐하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끝낼 수 있을 때 끝낸다고 맞받아쳤다고 합니다. 그는 권력가들에게 굽히지 않고 할 말을 하는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볼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작품 감상하기
많은 작품 중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 무릎 위에 누워있는 작품이 있다. 피에타로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생전 유일하게 완성을 끝마친 작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피에타의 주제는 14세기경 독일에서 시작하여 다양하게 표출되었다고 하는데 그중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마리아의 얼굴이 매우 어리고 예쁘게 표현되었고 예수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신체 비율이 매우 거대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의 종교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르네상스는 대략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 역사에서 이뤄진 시기로. 프랑스어"renaître"에서 유래되었으며 '부활하다' 또는 '소생하다'를 의미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고전 지식의 재탄생이자 새로운 시대의 여명기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고대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예술 및 지식에 대한 흥미를 재차 불러일으킬 정도로 되살아났으며 학자와 사상가들은 고전적인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더 세속적인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술은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감정적 깊이를 포용한 인본주의적인 접근방식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슬픔에 젖은 마리아로 표현될 수도 있었겠지만 모성애를 강조시킨 마리아를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다른 시각에서는 마리아를 또 다른 상징성으로 표현해 놓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