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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영화는 제2차 세계 전쟁을 배경으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감미로운 연주를 한 실제 연주자를 만 날 수 있으며, 당시 시대 배경을 통해서 비극적인 상황도 알아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피아니스트 영화의 실화를 바탕으로 본 슈필만의 삶
이 영화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던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3개 부문과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홀로 코스트를 배경으로 하였기에 다소 분위기가 어둡고 슬픈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 폴란드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합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군 배역은 독일 배우들이 맡아서 연기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음악세계에 대해서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 (Władysław Szpilman, 1911년 12월 5일 ~ 2000년 7월 6일)은 폴란드 남부 출신으로 국립 음악 대학인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1935년 4월 5일 폴란드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인 폴스키에서 클래식, 재즈, 피아노 곡을 연주했습니다. 1939년에 폴란드 침공이 일어나서 가족들은 바르샤바 게토 (Warsaw Ghetto)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노동자의 삶을 살았고, 후에 도망쳐서 바르샤바 게토가 있던 곳에 숨어 살았습니다. 숨어 지내는 동안 나치 정권에 불만을 가졌던 독일군 대위에 의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으면서 목숨을 지켜나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슈필만은 그의 행적을 찾으려 했으나 소련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가서 죽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슈필만은 폴란드에서 다시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대중음악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공산주의 정권에 검열을 당해하고야 했습니다. 1998년에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고, 2002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극 중 연주자와 실제의 연주자는 다르다.
슈필만을 연기한 사람은 미국의 배우이자 29세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애드리언 콜라스 브로디입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체코계 유대인 혈통을 물려받았고 역사 교수이자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폴란드계 유대인 혈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종교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했으며 고등학교 시절 뉴욕의 골목에서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한 부모님이 연기를 시켰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 음악가는 야누시 올레이니차크(1952)로 폴란드 인입니다. 그는 쇼팽의 푸른 노트에서 쇼팽 역으로 출연하여 플레옐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오케스트라와 슈필만이 함께 연주한 장면에서 슈필만의 클로즈업된 손은 야누시 올레이니차크의 손이라고 합니다. 이때 연주된 피아노 곡은 쇼팽의 그랑 폴로네즈 브릴란테 Op22입니다. 이 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위한 곡으로 화려하고 피아노 부분은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누시 올레이니차크는 국제 쇼팽 Concours에서 우승한 21살의 조성진 피아니스트에게 17명의 심사위원 중 최고점인 10점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유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독일은 패전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독일의 주요 관심사는 국제 연맹이 관리하는 독일인 거주 자유 도시 단치히의 존재와 폴란드 영토인 동프로이센의 존재였습니다. 당시 동 프로이센은 폴란드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빼앗긴 영토였기 때문에 동 프로이센을 돌려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독일은 군사력 증강과 전쟁준비를 하였고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습니다. 그해 10월 16일 독일은 소련과 우호 조약을 맺고 폴란드 전체 점령에 나서게 됩니다. 이로 인해 폴란드와 동맹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이것을 빌미로 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를 최초 침공함으로써 민간인 1200명과 지식인, 예술가, 사회적 지도층 20000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폴란드에 거주하는 독일계 폴란드인 61000명이 징집으로 협력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전쟁은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승리한 사람일지라도 슬픔을 후유증으로 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 비극만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